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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9 | 9 | ||<-2> '''진상 은폐''' ||2006년 1차 조사단을 특수부대가 기습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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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0 | 10 | ||<-2> '''피해자 수''' ||피해 아동 약 96명 (사망자 포함)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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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1 | 11 | ||<-2> '''후속 조치''' ||2008년 진상규명 보고서 발간[br]생존 아동들에게 피해보상금 지급 및 고등교육까지 무상교육 지원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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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2 | | ||<-2> '''논란 및 의혹''' ||남라이카 국력 약화를 위해 프로젝트의 결과가 사용될 수 있다는 의혹 존재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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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2 | ||<-2> '''논란 및 의혹''' ||남라이카 국력 약화를 위해 프로젝트의 결과가 사용될 예정이었다는 의혹 존재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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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2 | 22 | 구스타프 폰 하멜른 박사는 천재적인 발상과 아이디어를 내며 병기를 개발하는 과학도이자 공학도였다고, 동료들은 회고했다. 그는 비록 무기 개발에 참여하는 인물이었으나, 다양한 방면에 자신의 소득을 기부하는 등의 선한 행보를 보여 이미지가 좋은 인물이었다. 1999년 황제로부터 과학계 발전에 기여한 공로로 남작 작위를 받았을 정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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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4 | | 그러나 하멜른 박사는 돌이킬 수 없는 길을 걷고 만다. 남라이카 아동들에게 각종 정신 질환을 유발시키면 국력을 떨어뜨릴 수 있고, 북라이카가 남라이카를 앞지를 수 있다고 확신했다. 그는 이를 제22중대에 전달했고, 이를 군이 승인하고 자금까지 지원하면서 하멜른 연구소의 연구가 시작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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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4 | 그러나 하멜른 박사는 돌이킬 수 없는 길을 걷고 만다. 남라이카 아동들에게 각종 정신 질환을 유발시키면 국력을 떨어뜨릴 수 있고, 북라이카가 남라이카를 앞지를 수 있다고 확신했다. 그는 이를 제22중대에 전달했고, 이를 군이 승인하고 자금까지 지원하면서 하멜른 연구소의 연구가 시작된다. 해당 기록은 남아 있지 않으나 동료 연구원들의 증언으로 하멜른의 목표는 후에 폭로되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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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5 | 25 | ===적색 4호 실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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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6 | 26 | 적색 4호 실험에는 32명의 아동이 사용되었다. 이 실험은 아동에게 소아 우울증을 일으키는 실험이었다. 세로토닌 억제제, 노르에피네프린 시스템 조작 약물 등이 투여되었다. 또한 약물의 심리적 효과를 강하게 하기 위해 햇빛 대신 LED 빛을 지속적으로 노출시켰다. 반대로 일부 아동들은 과도한 햇빛에 노출되었는데, 이는 약물의 '실효성'을 검증하기 위해서, 즉 실제 환경보다 더 많은 태양광 아래에서도 약물이 작용하는지 확인하기 위해서였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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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8 | | 약물의 부작용으로 인해 11명의 아동이 생존했다고 보고되지만, 일부 아동들은 자살을 시도했다는 일부 증거도 있어 논란이 되고 있다. 소아의 자살은 심리학적으로 드문 일이기에 학계에서도 의견이 갈린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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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9 | 27 | ===청색 7호 실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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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0 | 28 | 40명의 실험체가 동원된 청색 7호 실험은 소아에게 정신분열증 즉 이중인격 장애와 조현병을 일으키는 실험이었다. 정상보다 많은 양의 도파민을 투여했고, 이를 보조할 각종 약물도 함께 투여되었다. 아동들이 보이는 조현병 증세는 면담을 통해 문서들에 기록되었고, 이는 약물 개발에 피드백을 주어, 더 많은 환각과 다중인격 증세를 유발하는 약물이 더 높이 평가되었다. 그런 더 '효율적인' 약물은 아동들에게 다시 투여되어 피드백을 받는 악순환이 이어졌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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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2 | | 청색 7호 실험은 가장 물증, 문서 기록이 남지 않은 실험이었다. 하멜른 연구소 측에서 증거인멸에 심혈을 기울였기 때문. 이 실험에서 정신분열증을 얻은 아동들은 환시, 환청을 경험하거나 과도한 망상장애에 시달리는 등의 피해를 얻었다. 이 과정에서 관리가 힘들어진 실험체들은 현장에서 총격으로 사망하기도 했고, 약물을 통한 살처분으로 삶을 마감하기도 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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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0 | 청색 7호 실험은 가장 물증, 문서 기록이 남지 않은 실험이었다. 하멜른 연구소 측에서 증거인멸에 심혈을 기울였기 때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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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1 | ===흑색 13호 실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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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2 | 흑색 13호 실험은 아동에게 인위적으로 자폐증을 유발시키는 실험이다. 24명의 실험체가 사용되었다. 각종 방사성 동위원소와 화학약품을 소아에게 투여하여, 두뇌 신경회로의 연결을 손상시키고 미토콘드리아의 다방면적인 변형을 유도했다. 한 번에 투여되는 것만으로는 치사량이 되거나, 인체의 면역 작용으로 인해 효과가 잘 나타나지 않았다. 따라서 주 단위로 미량의 약물 노출이 실험체들에게 가해졌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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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3 | ===1차 의혹과 은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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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4 | 하멜른 프로젝트는 2006년까지 철저한 비밀로 포장되었다. 그러나 비정상적인 생화학 약품이 북라이카로 유입되는 것을 눈치챈 미합중제국은 비밀 루트로 북라이카 정부에 의구심을 표명했다. 북라이카 정부는 오히려 당황을 표명했고, 미합중제국과 북라이카 제국정보원의 합작 조사가 시작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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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6 | 양국은 신중을 기해 조사 인원을 편성하고 전국의 연구소, 실험 기관에 조사단을 파견한다. 조사단의 말단 대원들은 북라이카인이었다. 그런데 이 소식을 들은 하멜른 연구소 측에서는 대응방안을 마련한다. 약물을 수송하는 차량을 분산시키고 일부는 폐차시켰다. 수송차량이 아닌 일반 차량으로 약품을 반입하기도 했고, 사망한 아동의 유해를 암매장하는 등으로 은폐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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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8 | 조사단의 의구심은 하멜른 연구소까지 닿았다. 그러나 제국정보원 내의 변절자가 하멜른 연구소와 22중대에게 이 사실을 전달한 지 오래였다. 22중대 특수부대가 조사단이 탄 차량 2대를 공격했고, 조사대원들은 현장에서 사망했다. 시신과 차량들은 가이웨란트의 절벽 지대 아래로 추락한 것으로 위장되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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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9 | ===프로젝트 발각===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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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0 | 보험회사, 경찰이 사건을 조사하던 중 작은 문제가 터졌다. CCTV에 마지막으로 차량이 확보된 시간과, '블랙박스에 찍힌' 차량이 사고를 당한 시점은 12분 35초의 시간차가 있었다. 그러나 당시 가이웨란트 도로는 긴급 공사중이라 차량을 통제하고 있었다. 이로 인해 시간은 지연되어야 했고, 아무리 빨라도 15분 이상의 시간차가 나야 정상이었던 것.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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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2 | 따라서 블랙박스에 이상이 있는 것은 아닌지 조사가 이루어졌고, 그 결과 그것이 조작된 영상을 담고 있다는 진상이 밝혀졌다.수상하게 여겨진 하멜른 연구소로 호위를 동반한 2차 조사단이 파견되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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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3 | 이 과정에서 조사단은 하멜른 연구소의 진사을 알게 되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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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4 | ==피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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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5 | 프로젝트 하멜른은 다수의 아동 사망을 낳았다.53명의 아동이 사망한 채 유해로 발견되었다. 생존한 43명의 아동은 영구적인 정신 질환을 보유하게 되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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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7 | 적색 4호 실험에서는 약물의 부작용으로 인해 11명의 아동이 생존했다고 보고되지만, 일부 아동들은 자살을 시도했다는 일부 증거도 있어 논란이 되고 있다. 소아의 자살은 심리학적으로 드문 일이기에 학계에서도 의견이 갈린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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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9 | 청색 7호 실험에서 정신분열증을 얻은 아동들은 환시, 환청을 경험하거나 과도한 망상장애에 시달리는 등의 피해를 얻었다. 이 과정에서 관리가 힘들어진 실험체들은 현장에서 총격으로 사망하기도 했고, 약물을 통한 살처분으로 삶을 마감하기도 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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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4 | 51 | 청색 7호 실험에서 살아남은 18명의 아동들은 현재도 정신 질환 때문에 정신과에 보호 입원된 상태이다. 정부는 사생활 침해를 막기 위해 신원을 공개하지 않고 있으나 비공식적인 경로를 통해 신원이 외부에 노출되는 일까지 발생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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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5 | 52 | 청색 7호 실험에서 살아남은 C양은 외부에 신원이 노출되어 정상적인 사회 생활의 어려움은 물론, 정신과 내에서도 차별과 따돌림을 받는 2차 피해를 받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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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6 | | ===흑색 13호 실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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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7 | | 흑색 13호 실험은 아동에게 인위적으로 자폐증을 유발시키는 실험이다. 24명의 실험체가 사용되었다. 각종 방사성 동위원소와 화학약품을 소아에게 투여하여, 두뇌 신경회로의 연결을 손상시키고 미토콘드리아의 다방면적인 변형을 유도했다. 한 번에 투여되는 것만으로는 치사량이 되거나, 인체의 면역 작용으로 인해 효과가 잘 나타나지 않았다. 따라서 주 단위로 미량의 약물 노출이 실험체들에게 가해졌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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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9 | 54 | 흑색 13호 실험에서는 14명의 아동이 생존했으나 비정상적인 약물 노출은 아동들에게 심각한 악영향을 미쳤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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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0 | 55 | 실험체 S12는 자폐증으로 인하여 '언어 기능이 정상적으로 발달'했음에도 불구하고 아무 말도 하지 않는 아이로 성장했고, S19는 지능 저하와 더불어 극심한 자폐증을 겪게 되어 사이코패스 같다는 말을 들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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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1 | 56 | S13 즉 [[노이에만 슈바르츠]]는 회고한다. 아이들은 구타당하지는 않았으나 어떠한 취미, 좋아하는 활동도 즐길 수 없었다고. 아이가 특정 음식을 좋아하는 것이 발각되면 그 음식의 공급이 중단되는 식으로 자폐증을 강화시켰다. 이는 심리학적, 신경과학적 근거도 없는 실험 방식이었으나 반박할 사람은 남아 있지 않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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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2 | | ===1차 의혹과 정부의 은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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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3 | | ===프로젝트 발각===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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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4 | | ==피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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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5 | 57 | ==사후 후속대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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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6 | 58 | ==평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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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7 | 59 | 21세기 북라이카 최악의 사태 중 하나로 꼽히는 프로젝트 하멜른. 대다수의 문화권에서 중시하는 아동의 인권과 생명을 유린한 이 프로젝트는 국내외로 많은 지탄을 받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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